금북정맥 (完)

금북정맥 19 구간 (엽돈재~만일고개)

솔바람. 2011. 11. 1. 21:53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직산위례성이라고 불려지고 있는 이곳은 그 동안의 일부 학자들에 의하여

부정된 바 있었던 백제의 첫 도읍지로, 최근에 와서 재조명되고 있다. 백제의 첫 도읍지가 위례성이

라고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명기되어 있는데 직산의 구호가 바로 위례성인 것이다. 따라서 이곳은

위례성의 백성들을 전란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산성으로 백제의 시조 온조가 만주지방의 고구려를

떠나 이곳 직산까지 와서 처음으로 도읍을 정하고, 개국한 곳이 현재의 직산면과 성환읍, 입장면, 성

거읍 지방이었고 위례산성은 난시소용의 것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보면

1,690척의 성이 있고 우물이 하나 있다고 전해지고 있고 또 온조왕 13년(BC 5)에 이곳으로부터 경기

도 광주 지방으로 천도한 것으로 되어 있다.                             (여행정보에서 펌)

 

 

산행일시 : 2010년 07월 04일 일요일

산행위치 : 금북정맥 3 구간 위례산 성거산 (충남 천안시)

산행코스 :  엽돈재-->459.1봉-->부수문이고개-->위례산-->우물목고개-->성거산-->만일사

산행거리 : 8.8 km

산행시간 : 입산 09시 12분~하산 14시 40분 (총소요시간  5시간 30분)

 

 엽돈재 34번 국도

 

                           만뢰지맥 분기점 .(금북정맥에서 분기한 6 기.지맥은 1구간에 자세히 올리겠습니다.)

                                  

                               금북정맥 엽돈재에서 분기한 만뢰지맥과 성거산에서 분기하는 영인지맥

                                  금북정맥에서 분기는 지맥들 1기맥 5지맥

                                                  ( 1.금북기맥 2.만뢰지맥 3.영인지맥 4.봉수지맥 5.석문지맥 6.성주지맥)

        만뢰지맥
만뢰지맥은  금북정맥의 서운산에서 남쪽으로  5.1km 떨어진

엽돈재(34번국도) 남쪽 200m에서 분기하여 서남진하면서

만뢰산 ,덕유산(德裕山.412m),환희산(歡喜山. 402.2m),

취령산(鷲嶺山.목령산(鶩嶺山 .229.1m.)을 일구고 취령산(목령산)에서 방향을 바꿔

서남진하며 다시 상봉산(196m),국사봉(國師峰.171m)을 일구고 경부고속도로를 건넌후

마지막으로 응봉산(175.4m)을 들어 올린후  청주시를 바라보며 미호천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9.5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이산줄기를 지나는 산들중 제일높은 산인 만뢰산의 이름을 따서 만뢰지맥이라 칭한다.

 

만뢰지맥의 동쪽으로 흐르는물은 백곡천이나 성암천이 되어 미호천으로 흘러들고

서쪽물은 병천천(46.75km)이 되어 충남의 천안시 북면, 병천을 거쳐

충북의 오창과 옥산면을 거쳐 청원군 강외면에서 미호천(89.20km)에 합류되어

서남진하여 연기군 동면 합강에서 금강(397.79km)에 합류하여 공주로 흘러간다.

 

전체적인 길의 상태는 길이 없거나 있다해도 동네사람들이

나물이나 버섯을 따러 드나드는 길이라서 있다 없다를 반복한다.

작은 지능선이 사방 팔방으로 갈라지고 수시로 방향을 바꿔서 위치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

다만  분기점에서 만뢰산구간, 환희산정상부,취령산(목령산)에서

삽티고개는길이 분명하고 그외는 길이 희미하거나

아예 길이없는 잡목과 가시덤불로 진행에 애를 먹는다.

긴팔은 물론이고 헌옷에 허벅지나 정갱이를 보호하는 보호대를 차는 것이 좋다.

되도록이면 녹음기가 아닌 가을에서 봄사이에 하는 것이 좋을것이다.

 


        영인지맥

영인지맥은 금북정맥이 칠장산에서 서남진하여

칠현산,덕성산,서운산, 성거산(579.1m)을 넘어
 걸마고개에 이르기 200m전에 서쪽으로 가지를 쳐 경부고속도로와 1번국도를 건너고
천안시 북부시가지를 지나서 노태산(141m),천안 제3,4공단을 지난다.
아산땅으로 들어선후 용와산(238.3m),연암산(292.7m)

둔덕산(225m),국사봉(222.5m),금산을넘어
영인산(363.9m)을 일군후 입암산(207.4m)에서 서해에 맥을 담구는 산줄기를 말한다.

 

     도상거리는 44.8km에 이르고

     이 산줄기 북쪽의 물줄기는 안성천으로 흘러들고
     남쪽의 물은 곡교천으로 흘러들어 삽교천에 합류한후 바로 서해로 들어간다.

     생각보다는 비교적 길이 잘나 있으나  천안시내구간인 1번국도에서

     노태산구간은 아파트와  번화가로 변하여 산줄기 모습은 찾을수 없고 

     노태산에서 624번 도로사이도 천안 3, 4 산업단지 조성으로 지형조차 변하여
     독도하기가 어렵다.그러나 624번 지방도로를 만나 일단

     아산시경계만 들어서면 이후 영인산까지 별 어려움이 없다.

     입암산은 채석장으로 완전이 맥이 끊겼다.

 금북정맥으 종주하는 우리 산꾼들에게 큰 힘을 불어 넣어 주시는  준.희님 감사 감사 합니다.

 

 금강발원지 심곡이 400m아래 샘이있다는데  또 다른 발원지 원류 샘인거 같습니다.

확인 하고 싶었지만 시간상 다음기회로 미루고 아쉬움에 발길을 돌린다

 

제가 알기로 금남 호남정맥의수분재(뜬봉샘)가 금강의 발원지로 알고있습니다.

장수군 장수읍과 번암면의 경계 호남정맥의 사두봉(1014.8m)과 신무산(896.8m) 사이에 위치한

수분재는 금강과 섬진강을 나누는 분수령이다.

이곳을 수분재라 이름 지은 것은 금강의 발원지이기 때문이다.

여기 깊은골(심곡)은 또 다른 금강 발원지.  두 발원지가 합수돼 금강으로 흘러가는것이 아닌가 사료 됍니다

 

        부소산의 유래

백제시조 온조왕이 마한 목지국의 진왕으로부터 동북 100리 땅을 봉토받아 백제 첫 도읍지<하남 위례성>을 세운 곳으로 전해진다

부소모이 고개는 부소산과 위례산성을 이어주며 부소령, 부소치, 부소문치 등으로 규장각 고지도에 전하며,

일명 "부수문이고개"라 불린다.  <비류와 온조가> 첫 도읍을 정하기 위해

臣과 함께 올랐던 한남정맥 용인의 부아산과도 이어진다.
부소는 솔(松)의 뜻이며 백제어로 부소모이였다. 

서해 아산만과 삽교천의 아산시 인주면 밀두리에서도 <직산 하남위례성>은 한 눈에 잘 보인다. 

 

 

 부여의 부소산이 있는줄 아는데 여기에도 부소산이 있네요 부소는 솔의 뜻이라네요.

역사적으로 두개의 부소산이 존재하는이유를 알고 싶어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만 별 도움이 되지않습니다.

 

 부소산에서 바라본 천안시 입장면 방향

 

 

 부소령고개

 비석엔 부소산 부소령이라고 적혀있다
바로옆엔 수준점이 보이다

 

비문에 적힌 한 시를 옮겨봅니다.

 

북으로 한수를 띠고
동으로 높은 산 의지하며
남으로 옥택을 바라보고
서로는 큰 바다에 막혔으니
땅이 험준하고 이로움 많으니
가히 얻기 어려운 형세라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편>

 

 

 위례산 아래 두개의 돌탑과 가운데 삼각점이 보인다  위례산은 조금더 올라야합니다.

 

  부소는 솔(松)의 뜻이며

  백제 온조왕이 하남 위례성 첮도읍을 새운곳이며

 직산<하남 위례성>의 진산이다

 

백제 초기의 도읍지.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고구려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이곳에 도읍을 정했다고 하는데,

위치에 대해서는 지금의 경기도 하남시 부근이라는 설과 충청남도 천안시 북면 일대라는 설이 있다.

 

 문화재발굴 조사가 덜 끝났는지 아직 마무리가 아직 안되었는지 정상 주변은 파헤쳐져 있고 천막 으로 덮어 놨습니다.

 

 위례산에서 본 조망들

 

 

 위례산에서 본 입장 저수지 방향

 

 우물목고개를 넘어 직진으로 오릅니다.문곰대장이 위치확인.한번더 확인~~

 성황당 고갯길

 철탑뒤로 성거산과 군부대가 보입니다.

 삼거리 성거 산성지 방향 잘 닦여진 군부대진입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멀리 성거산 정상이 보인다.우리 일행은 도로를 버리고 옆 마루금을 제데로 밟는다

우리 산줄기 사전에는 1 m 의 마루금을 벗어나지않고 종주하겠다는 정열과 집념이 대단합니다.

  천주교 성거산 성지를 둘러보고 갑니다.

 신유박해(1801년)~병인박해(1866년) 65년을 박해를 피해 여기 교우촌에 숨어살어셨답니다

많은 순교자들이 여기 성지에 잠들어 계신다.

 

 천안 성거산 천주교 교우촌터

충남기념물 제175호인 천안 성거산 천주교 유적은 병인박해 당시 성거산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다

순교한 분들을 모신 줄무덤 및 신앙 공동체였던 교우촌 유적이다. 
줄무덤(제1,2)에는 소학골에서 체포되어 1866년 11월 8일 공주 황새바위에서

순교한 배문호(베드로), 최천여(베드로),최종여(라자로), 고의진(요셉), 채씨 며느리 등 5명의 시신과 무명 순교자들이 안장되어 있다. 

 천안 성거산 자락은 19세기초부터 천주교 박해 이후까지 천주교인들이 신앙생활을 영위했던 삶의 터전으로,

 특히 이곳 소학골 교우촌은 칼래 신부의 충청, 경상, 경기 일부를 관할했던 사목활동 중심지이고

 천주교 박해시 교우촌의 지형, 생활유적, 기록이 보존된 유적이다.

 교우촌안 마리아상앞에서 경건하게 참배를 한다

 

 

 

 

 줄 무덤

 시가 가슴에 아려 찍었습니다.정만 푸진 아녜야 어디만큼 갔니....

성거산 오르는길에 본 천호저수지 전흥리 방향같습니다.

 건너다 본 태조봉 흑성산

  공군부대 정문옆 철조망 좌측으로 돌아야한다.

 정문 옆 철조망 담옆으로 등산로가 희미하게 나있다.풀과 덩굴이

등산로를 뒤덮혀있어 길을 잘못찾았나 싶어 한동안 당황 했습니다.

 털중나리가 반갑게 우릴 보고 쳐다보고 가란다.

털중나리 

흔히 나리꽃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종명이 아니고 속명이다.
백합과 나리속에 속하는 식물 중에서 가장 먼저 꽃이 피는 것이 털중나리이다.
산의 양지바른 곳에서 볼 수 있으며 전체에 가는 털이 있다.
털이 없는 것은 중나리라고 부르는데 희귀해서 보기가 어렵다.

 

 

성거산(聖居山)은 충청남도 천안시에 있는 579m의 산이다. 백두대간에서 나눠진 금북정맥(錦北正脈)의 성거산에서

서쪽으로 달려가는 맥이 노태산이고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는 맥이 백제 도읍지였던 위례산의 위례산성이다.

남쪽으로 계속 내려가는 맥이 태조산이다. 고려 태조는 직산의 수헐원에 들렀다가 동쪽의 성거산을 바라보니

오색이 영롱하여 그 아름다움을 보고 영험한 산이라 여겨 제사를 지내도록 했으며 성스러움이 거(居)하는 산이라 하여

(聖居山)이라 칭했다는 《직산현지》의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성거산 삼각점

 

  돌탑이 서 있는 만일고개 현 위치
만일고개는 만일사로 가는 갈림길과 태조산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오늘 산행은 아쉽지만

산행을 마칩니다 아래 만일사 방향으로 하산합니다.

 만일사

다음 산행 들머리 여기서 다음구간 걸마고개 태조봉 경암산으로 이어집니다.

오늘 산행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