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정맥 5구간 (양정고개-물한이재)
일 시 : 2012년 4월 1 일 (일요일)
위 치 : 충남 논산
코 스 : 양정고개-천마산(287m)-두리봉(278m)-천호산(311m)-377봉-363봉-
332봉-황령재-함박봉(404m)-398봉-347봉-391봉-깃대봉(394m)-덕
목재-363.9봉-물한이재
산행거리및시간 : 17.9km 5시간40분
양정고개의 들머리. 신계룡지구대앞에서 출발
오늘산행의 들머리.천마 천호산 등산안내도
248.3봉의 삼각점 (4등급 57번)
공주 457번의 삼각점 안내판
248봉에서 내려본유성방향
천마정
천마정에서 내려다본 계룡시청 방향의 아파트촌 금암동 일대
금바위의유래 안내판
천마산 정상 박건석님의 안내판이 반갑다
계룡시에서 세운 금남정맥의 자세한 안내판
산군으로서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천마산 정상 먼저 답사한 박건석님에게 감사 다음산행때 함게하길.....
두리봉정상
임도갈림길
천호산정상
대목재
황령재(황령 또는 누르기재라고도 함)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신암리와 벌곡면 한삼천리 경계에 있는 고개.
황령재에는 함박산성 또는 황령산성이라 불리는 토성이 있다. 백제 때 구축 한 산성으로 주위가 약 300m에 이른다. 백제군의 중요한 산성이었으며, 삼국시대 말기 신라와 백제 간의 전투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황령재는 바로 황령산성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 황령재는 남북 방향의 천호봉(352m), 깃대봉(393.1m), 국사봉(333m)에 속해 있는 고개로, 함박봉(404m)의 북쪽에 위치해 있는 고개이다. 고개의 서쪽은 대체로 구릉들로 이루어져 있다.
. 고개를 경계로 서쪽은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어 논과 밭농사가 혼재되어 있으며, 동쪽으로는 대체로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기타 도로가 동서 방향으로 황령재를 통과하여 연산면과 벌곡면을 연결하고 있다.
황령재에 세워진 황산벌의 전적지 안내판
황산벌은 지금의 충청남도 연산지방이다. 7세기 중반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의 압력이 가중되자 당과의 외교관계를 강화했고, 당 역시 여러 차례의 고구려원정에서 실패하자 백제를 선제공격하기로 하여 당과 신라 사이에 군사동맹이 체결되었다. 그리하여 660년 3월 당 고종은 소정방(蘇定方)을 시켜 13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산둥[山東] 반도를 출발하여 백제를 공격하게 했다. 이에 호응하여 신라 무열왕은 그해 5월에 김유신 등의 장군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경주를 출발하여 6월 18일 남천정(南川停 : 지금의 이천)에 머물렀다. 그리고 태자 법민(法敏)을 보내 병선 100여 척을 거느리고 덕물도(德物島 : 지금의 덕적도)에 가서 소정방을 맞이하게 했다. 이때 당군과 신라군은 백제의 수도인 사비에서 합세하여 공격할 계획을 정했다. 태자가 돌아오자 무열왕은 대장군 김유신과 장군 품일(品日)·흠춘(欽春) 등과 함께 정예 군사 5만 명을 거느리고 사비성(泗沘城 : 지금의 부여)으로 향하게 했다. 당시 백제 조정에서는 방비책을 강구하던 중 당군이 백강(白江 : 지금의 금강)에 상륙하지 못하게 하고 신라군이 탄현(炭峴 : 지금의 충남 대덕)을 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흥수(興首)의 견해를 묵살했다. 그리하여 백제군은 백강에 상륙한 당군에게 대패했고, 신라군은 이미 탄현을 넘어 황산벌로 진군했다. 의자왕은 계백 (階伯)에게 5,000명의 결사대를 주어 이를 막게 했다. 계백은 가족을 죽인 뒤 비장한 각오로 출전하여 황산벌에 먼저 도착하고 3군데에 진영을 설치했다. 신라군은 군사를 3갈래로 나누어 4번을 싸웠으나 이기지 못했고 군사들은 지쳤다. 이때 신라의 장군인 흠춘이 아들 반굴(盤屈)을 적진으로 보내 힘껏 싸우다 죽게 했다. 그러자 장군 품일 역시 아들 관창 (官昌)을 내보내 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들게 하여 결국 죽게 했다. 반굴·관창의 용감한 모습에 감격한 신라군은 죽음을 각오하고 진격하여 크게 승리했다. 백제군은 중과부적으로 대패하여 계백이 전사했고 좌평(佐平)·충상(忠常)·상영(常永) 등 20여 명이 사로잡혔다. 그 전투에서 신라군이 당군과 합세하기로 약속한 기일에 늦었다고 하여 당군과 신라군 사이에 마찰이 생겼다. (다음 백과사전에서 퍼옴)
황령재에서 함박봉 오르는 등산로
함박봉의 산림감시초소
함박봉에서 내려다본 황산벌
이곳 항산벌 그날의 처절했던 전투가 생각이나 잠시숙연해진다
5만의 신라 대군과 대적하기에는 5000의 백제군의 숫자가 너무 적었다.
5번의 전투중 4번을 이겼으나 중과부적으로 결국 패하여
결국 계백 장군과 5천 결사대는 모두 죽었고, 백제는 멸망하고 말았다.
함박봉 (산의 모양이 함지박처럼 생겼다고 함)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신암리와 벌곡면 한삼천리에 걸쳐 있는 산.
함박봉 북쪽 능선에는 황령재가 있는데, 이곳에 함박산성 또는 황령산성이라 불리는 토성이 있다.
백제 때 구축한 산성으로 주위가 약 300m에 이른다. 백제군의 중요한 산성이었으며,
삼국시대 말기 신라와 백제 간의 전투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깃대봉의 삼각점과 안내판
깃대봉 정상
깃대봉에서 인증샷~~
저 아래 호남고속도로 와 덕목재가 보인다
짓다만 건물
덕목재 아래 지하통로를 이용한다
덕목재 버스정류장
오늘산행의 하산지점인 물한이재의 물한이재 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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