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 2007년 07월 12일 목요일
산행위치 : 백두대간 지리산 도토리봉 산청군
산행거리 : 21 km (아래새재에서 차량이동) 28.5 km (유평리 매표소)
산행시간 : 6시간 30분
산행코스 : 밤머리재-->도토리봉-->깃대봉-->왕등재 고산습지-->
왕등재-->새봉-->아랫새재-->대원사-->유평리 매표소
왕등재
駕洛國 마지막 천연요새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마을 뒤 산 해발 1045m 이곳은 왕이 올랐다하여 왕등재(왕등치)
이곳은 높이 3m 이상의 견고한 토성으로 내 외 성을 2중으로 쌓았고 석축으로 쌓은
남 서 북 문을 냈으머 성 한가운데에는 궁을 만들었고 그터가 잘 보존 되 있다는데
아쉽게도 확인 하지못했습니다.이 지역 전해오는 전설로는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 왕등재일대에다 토성을 쌓고 신라군과 끝까지 항전하다 패하여
왕산 (필봉산.923m) 으로 쫒겨가 최후를 마쳤다는것이다
북쪽 기슭에는 구형왕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리산 동쪽 끝 자락에 왕이 올랐다는 왕등재가 있다. 한자말로는 왕등치(王登峙)라고 한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천왕봉·중봉·하봉에서 웅석봉 사이의 정남향으로 자리한 보기 드문 명당으로 일컬어진다. 해발 1000m급에 불과하지만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왕등재는 지리산 주변의 산청과 함양의 전경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가 하면 영욕의 역사를 안고 도도히 흐르는 경호강의 물굽이를 발아래 두고 있다. 가히 선경이 따로 없음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천왕봉의 용틀임하는듯 산세가 그대로 뻗쳐 내려온 지리산의 동쪽 자락 한가운데 있어 천왕봉의 위용과 동쪽 웅석봉의 고고한 자태를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다. 멀리 아스라이 다가오는 다도해의 물결도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엷은 군청색 가을하늘 아래 누구도 손대지 않은 울창한 수림의 가을 단풍이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고 선명하게 수놓아져 있는 가을 날의 왕등재는 더욱 돋보인다. 여기에다 지리산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가을의 억새 능선에서 풍겨 나오는 정취는 지리산의 색다른 가을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왕등재는 천혜의 지리적 여건과 함께 가락국 마지막 임금인 구형왕의 한맺힌 구국정신이 깃들인 역사적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해 깊어가는 이 가을에 한번쯤 답사해 봄직한 명소이다.지리산 동부권역에는 특히 이 마지막 임금에 얽힌 사연이 깃들인 곳이 많이 있다. 그 가운데 이곳 왕등재가 가장 극적인 지점으로 인근의 왕산 기슭 구형왕릉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왕등재에 얽힌 구형왕 설화는 지리산에 들어온 구형왕이 왕등재에서 토성을 쌓고 항전하다 끝내는 왕산으로 쫓겨가 최후를 맞게 됐다는 구전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흔적들로 외곡마을에서 왕등재로 곧장 오르다 보면 왕등재와 오른쪽 1030m 고지를 원형으로 둘러싼 토성이다. 토성은 외성, 내성을 겹으로 쌓았는데 원래 높이는 3m 정도였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특히 성을 따라 남문·서문·북문이 적당한 간격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성문이 있던 곳만 석축을 쌓은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이러한 토성과 성문의 석축 흔적은 아직도 왕등재 일원에 남아 있다.
구형왕의 축성에 관한 구전은 왕등재와 함께 앞서 "국골"편에서 언급한 추성산성터에서 동시에 찾아볼 수 있다. 추성산성을 축조하고 국골에서 병마를 훈련했다는 구전을 뒷받침하는 것들로는 얼음터·두지터 등이다. 반면 왕등재의 사연은 왕등재 일원의 토성과 성문 흔적 이외에 왕등재 남쪽의 935m 고지의 깃대봉(군대의 깃발을 걸었다는 의미), 망을 보았다는 망덕재, 말을 사육했다는 망생이골 등이다.
결국 왕등재에 얽힌 구형왕의 사연을 살피면 왕등재를 궁으로 삼고 유평계곡 일원을 마지막 요새로 삼았다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에서 볼 수 있듯 쑥밭재를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두 곳에서 거의 비슷한 시기에 구형왕이 강력한 요새를 구축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이의 실현 가능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나 지리산 사람들은 이 두 가지의 축성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며 남다른 애착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경우 구형왕이 신라에 쫓겨 국골 일원에서 항전하다 다시 왕등재 일원을 요새로 삼았으나 결국은 쫓겨 왕산으로 가 최후를 맞이했다는 가설을 세워 볼 수 있지만 이는 구전을 통한 가능성일 뿐 정확한 고증이 되지 못한다. 또한 구형왕의 후손인 김유신장군 등이 신라통일의 중추역할을 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비추어 볼 때 구형왕의 지리산 축성과 항전에 관한 구전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그러나 깊고 깊은 지리산 골짜기에 성터가 존재하고 그에 얽힌 구형왕의 사연이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아직 아무런 규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문을 낳고 있다. 어떻든 지리산 사람들의 구형왕에 대한 애착과 역사적 사실이 상존한 왕등재와 국골, 왕산의 갖가지 유적들에 대한 신비감은 갈수록 깊어만 가고 있어 이에 따른 학계의 정확한 고증작업을 기대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왕등재 고산슾지 (우리나라에서 최고 높은데 위치한 신비의 슾지)
왕등재의 역사적 의의와 함께 해발 1000m 지점에 대규모 늪지대가 있다는 사실도 왕등재의 신비함을 더한다. 너비 70m 가량에 2백여 m 가량 길게 펼쳐진 왕등재의 늪. 사철 물기가 서려 나무는 한 그루도 자라지 못하고 풀밭만 펼쳐져 있다. 물과 진흙 위에 펼쳐진 풀밭은 발목까지 질퍽거리게 하는 고산지대의 늪지대인 것이다. 왕등재 일원은 이 늪지대를 중심으로 또한 광활한 분지형 지대를 이뤄 마치 세석평전과도 흡사하다. 광활한 산상과 평원은 억새와 싸리나무로 뒤덮여 가을 분위기를 한층 더하고 있는가 하면 평원 저 멀리로는 천왕봉과 중봉이 우뚝 솟아 있어 색다른 운치를 자아낸다. 뿐만 아니라 평원 주변으로는 1030m 고지와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이 에워싸고 있는가 하면 북쪽으로는 왕산과 이어지는 지능선을 두고 있어 한층 더 신비감을 갖게 만드는 천연 요새처럼 보인다.
왕등재 뒤 새봉
왕등재 고산습지
대원사 일주문
대원사 대웅전
방장산 대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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