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1차 2차 (完.동영상)

백두대간 9회 수정 고남산 (동영상)

솔바람. 2005. 11. 10. 22:34

                 


         

산행일시 : 2007년 12월 13일 목요일 (2차 산행)  (1차. 2005년 11월 10일 목요일)

산행위치 : 백두대간 수정봉 고남산 (지리산권) 전북 남원

산행거리 : 15.7 km

산행시간 : 오전 11시14분 입산~오후 4시 14분 하산  5시간 소요

산행위치 : 고기리-->노치샘-->수정봉-->입망치-->여원재-->고남산-->통안재-->권포리

 

산행소감 : 2005년 11월 10일 목요일  1차 산행때는 처음 산행이라 걷기에 바빠 정신이 없었네요.

               요번 2차 산행에는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천천이 구경하고 촬영도 했습니다.

               1차와 달리 대간길 좀 더 정비를 했더군요,나무계단도 만들고 고남산 정상비도 새로 세워놓왔습니다.

               수정봉 정상에는 아직 정상을 표시하는 것이 보이지않고 경계를 표시하는 경계석이 정상을 알리네요.

               수정봉 부터  눈발이 날리더니 하산때까지 조망을 방해 하네요. 고남산 부근 조망을 찍지못해 아쉬웠습니다.

                           

       고남산 정상석 작년에는 없었는데 금년에 새로 세워 놓왔습니다

 

                   고남산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산동면 경계에 있는 백두대간
높이는 846.8m이며 가재-수정봉-고남산-여원치로 통하는 백두대간의 맥상에 놓여 있다. 특히 운봉의 북서쪽을 지키는 산으로 운봉분지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요천이 흘러내리는 산동남원 쪽을 모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이 좋은 산이다.
위치상 옛날부터 전쟁의 요충지가 되었다. 고려 말인 1380년(우왕 6)에 인월면 인월리에 본진을 둔 왜장 아지발도에 맞선 이성계가 천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이곳에 당도하여 제단을 쌓고 서쪽 기슭에 있는 창덕암 약수터에서 목욕재개하고 산신제를 올리고 황산(荒山)에서 대승을 거두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명칭유래]
고남산의 유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주민들에 의하면 고남산태조봉 또는 제왕봉이라고도 부른다. 태조 이성계가 고려 말 왜구를 무찌를 때 이곳에 제단을 쌓아 제를 올렸기 때문이다.

주변에 이성계와 관련한 지명이 전해지는데 여원치에서 고남산 초입에 있는 마을은 이성계를 수행하던 무학대사가 지세를 보고 고남산의 산줄기가 이 마을 까지 뻗어 내린 모습이 마치 긴 다리를 이어 놓은 것 같다하여 장교리(長橋里)라 지었다. 또한 고남산 아래에서 산신제를 올릴 때 주둔하던 군사와 말들의 식수로 썼던 샘터 주변에 터를 잡은 권씨 일가의 권세가 크다 하여 권포리(權布里)라 하였다.

 

 

 가재마을 중앙에 자리한 노치샘

 안내문에 의하면 노치마을은 조선초 경주 정씨가 터를 잡고 이어 경주 이씨가 들어와 형성 되었으며 해발 550m의 고랭지로서 본래 이름은 갈재라고 했다. 마을 앞 지리산의 관문인 고리봉과 만복대에 억새가 많이 있어 갈재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蘆峙라고 쓴다. 한국 전쟁때는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으로 마을 전체가 완전히 불타버린 아픔이 있는 마을로 한 마을에 두개의 행정구역이 존재하며 마을뒷산에는 삼국시대 축성된 노치산성이 있다고 정리하고 있다.

 

옛날 수정광산이 있어 부르게 되었다는 수정봉마치 학이 날개를 펴고 날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 곳으로, 전설에 의하면 수정봉노치마을에 옛날 민씨(閔氏)라는 거지가 살았는데 그는

짚신을 삼아 팔면서 살았다고 한다. 어느 추운 겨울날 민씨가 죽어 눈 덮인 산을 헤매어 시체를 매장

하려는데 신기하게도 시체의 관이 알맞게 들어갈 만큼 눈이 녹아 있는 곳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곳에 장사를 지냈는데 바로 그 자리가 용은 용인데 주인이 없다는 황룡무주(黃龍無主)의

명당이었다.
이 묘를 쓴 뒤 그 후손이 번창하였다고 하는데 그 묘에 호화롭게 석물을 세우고 보수를 한 뒤로는 자손

들이 뜻밖에도 나쁜 일을 당해서 다시 석물들을 없앴더니 화가 없어졌다고 한다. 돌이 무거워 학이

날지 못했다는 것이다

 

 

 

 

 남원에서 24번 국도를 타고 운봉읍으로 가다보면 여원치(여원재)를  넘는다. 
  해발 477m의 여원치는
남원에서 운봉을 거쳐 함양으로 이어지는 재로  고려 말 왜구의 희롱을 거부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여인이 산신이 되어 이성계의 전승을 도왔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여원재에 우뚝선 돌장승 운성 대장군 옆 길이 대간길

 

 

 

 

 

지리산 만복대 방향의 고리봉

 

 고남산 아래 새로 만든 나무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