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재봉(태평봉수대)
대불리와 무릉리 그리고 완주군 운주면 고당리 접경진등 마을에서 북서쪽 직선거리 1,200여m의 성재봉우리(830m)에 있다. 옛날의 봉수대로 알려진 유적은 산 꼭대기에 있는데그것은 크고 울퉁불퉁한 천연의 암석위에 잡석으로 쌓아올린 석축으로서 조선중기의 임진왜란 이후 선조28년(1595)에 태평산성과 전주감영에 신호를 보내기 위하여 세웠다고 한다. 그 모습은 대체로 네모꼴 이지만 4변이 일정하지 않은데(높이 : 동벽 450cm, 북벽 360cm, 서벽 495cm, 밑변 : 동 1020cm, 북 700cm, 서 1050cm, 윗변 : 동 900cm, 북 640cm, 서 990cm, 남680cm) 남쪽의 대부분과 서쪽 일부의 벽은 무너졌으나 나머지는 거의 완전하며 가운데는 흙으로 채워져있다. 전라북도와 진안군의 기록에는 또 동쪽에서 올라가는 돌계단이 있다고 하였으나, 계단은 없고 남쪽이 통로였던 것을 알수 있다. 석축 위에는 전라북도에서 세운 안내판이있고 남쪽 벽바로 아래에 "전라북도 지방기념물 제36호 태평봉수대"(1977. 12. 31 지정된)라고 새긴 비석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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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정맥 8 구간 (백령고개-백암산-신선봉-성재봉-직은싸리재)
일 시 : 2012년 4월 29 일 (일요일)
위 치 : 충남금산.전북완주 ,진안
코 스 : 백령고개-405봉-610봉-독수리봉-백암산(650m)-560ㅇ봉-사거리-
713.5봉-760봉-게목재-신선봉(790m)-암봉(735m)-719.9봉-786.6봉-
성재봉(824m)-작은싸리재-진동리(중리1교)
산행거리 : 13.5km +4 km(접속구간)= 약 17.5 km
산행시간 : 본인(후미)기준 입산 (09 ; 56분~하산시간 16 : 46분) 총소요시간: 7시간
오늘산행의 들머리 600고지 전승탑을 오른다
'600고지'는 한국전쟁에서 패배한 북한군이 금산군 소재 백암산에 집결해 산을 요새화한데서 비롯됐으며,
전쟁발발후 5년여 동안 군경합동토벌대와 북한 인민유격대(빨치산)간 전투가 벌어졌다.
토벌대와 격전으로 양쪽 모두 2536명이 목숨을 잃었다. 금산군은 1991년 3월 25일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려고 '육백고지전승탑'을 건립했다.
전승탑 인근에는 충혼비와 육백고지참전공적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600고지 전승탑의 자세한 안내판
금산 백령성 안내판
백령고개(잣고개)
육백고지승전탑(충혼탑)
한국전쟁 때 이 산은 '600고지' 라는 이름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 600고지를 중심으로 수개월에 걸쳐 밀고 당기는 격전이 펼쳐져 남북을 합쳐 2,400여 명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퇴로가 막힌 공산군과 빨치산, 그리고 동조자들과 그들이 납치한 민간인 등 수천 명이 집결하여 험악한 산세를 이용, 이 산을 요새화했다.
운장산, 덕유산을 잇는 큰 산줄기의 통로를 이용해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금산, 진안, 완주를 비롯한 인근 민가들을 끊임없이 습격하고 약탈하는 이른바 그들의 보급투쟁을 벌였다.
군경부대는 골칫거리인 이 600고지를 토벌하기 위해 온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이 산에서만 빨치산을 포함 공산군 2,287명이 사살되었으며 1025명이 생포되었다.
남한도 경찰 184명, 군인 20명, 민간인 72명 등 276명의 희생자를 내고서야 600고지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은 끝났다.
그리 크지 않은 산에서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전투, 그것도 후방에서 일어났던 전투로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래서 육백고지전승탑과 육백고지참전공전비 및 전사자의 이름이 새겨진 충혼비가 금남정맥 배티재(백령) 고갯마루에 높고 크게 세워졌다.
그후 이 일대가 광장과 더불어 공원화되어 지금은 찾는 이들이 많다.
여기 승전비 앞에 서면 그 엄청난 참극이 빚어졌던 600고지 백암산은 높은 탑 뒤로 그저 푸르고 아름답게 보일 뿐이다.
금산 백령성
남이면 건천리와 역평리 선치산(仙治山)의 동쪽에 있으며, 둘레가 약 200m에 이르는 백제의 테뫼식 산성(山城)이다. 이곳은 금산군 제원면과 추부면을 통하여 영동/옥천에 이르는 전략상 요충지이다. 김정호(金正浩)의 『청구도(靑丘圖)』에는 백자령(栢子嶺)으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탄현(炭峴)으로 나와있다. 금산군의 외곽성(外廓城)으로 알려져 있으며, 서쪽을 제외한 동, 남, 북쪽은 거의 허물어졌다. 서쪽 벽의 남은 상태를 보면 바깥쪽 벽의 높이는 5.8m~6.9m 이고 안쪽 벽은 2.3m~3m이며, 성벽의 너비는 4m에 이른다. 성내에서는 백제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 등이 발견되며, 산봉우리에는 봉수대(烽燧臺)가 있어 진악산(進樂山)의 관앙불봉(觀仰佛峰)의 봉수와 서로 교신하였다. 특히 견훤(甄萱)이 완산(完山)에 도읍을 정하고 도읍 방어를 위해 이 산성의 아래에 있는 남이면 대양리에 경양현(景陽縣)을 설치하고 백령성을 다시 고쳐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
※ 참고문헌 금산군지편찬위원회 1987 금산군지 충청남도 1993 문화유적총람 충청남도 1996 문화재대관 |
총청남도 기념물 83호로 테뫼식(성곽의 축조 지형이 산의 정상을 중심으로 산의 7~8부 능선을 따라 거의 수평되게 한바퀴 둘러쌓은 것)의 성이다.
둘레가 300m고 높이가 5.8m~6.9m며 안쪽 높이는 3m, 성체의 넓이는 4m다. 봉수대 흔적이 있으며 백제시대의 토기와 기와 조각이 발견되었다.
이 '백령'은 고산자 김정호의 <청구도>(1834년)에는 '백자령', 1861년에 쓴 대동여지도에는 '탄현'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금산의 백령성 폐허로 변한 성터가 애처롭기 만합니다.자세한 안내판이라도 세워놓으련만 아쉽습니다. |
독수리봉
맞은편 선야봉에서바라보면 독수리머리와 양 날개를 펼쳐보이는 형상이란다
독수리봉에서 뒤돌아본 천등산과 우측 멀리 대둔산줄기가 보인다
독수리봉에서 마주보이는 성치기맥 줄기
독수리봉 정상
백암산(금산 남이) . (일명 600고지)
남이면에 위치한 백암산(650m)은 충남과 전북의 경계를 이루며 운장산에서 대둔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금산 쪽으로 이어지는 미묘한 지형적 특성을 가져 전술적인 가치가 높은 곳이었다. 6.25당시 퇴로가 차단된 빨치산의 중요한 거점과 요새로 자리잡아 수많은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그 후 이 곳에는 '600고지 전승탑'과 '600고지 참전공적비' 및 '충혼탑'이 세워져 불행했던 한국 현대사의 한 시기를 대변해 주고 있다. 백암산이란 이름보다는 작전상의 고지 표시인 '600고지'로 더 널리 알려지게 됐으며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장소와 반공정신의 교육장으로 활용됐다. 이 백암산은 후백제의 견훤이 현재의 남이면 대양리에 경양현을 설치하고 금산의 서남방면(신라 영토인 영동,옥천)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한 백령성이 아직도 남아 있다. 후삼국 당시 서로간에 물고 물리는 접전이 벌어졌음을 짐작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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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금산 남이면에 소재한 백암산은 6∙25전쟁 때 치열한 싸움이 있었던 600고지로 유명한 산으로 아침 햇살을 받으면 바위 낭떠러지가 하얗게 보이기 때문에 백암이라고 한다.
백암산에서 아름다운강산님(정병훈&하문자씨)과 함께 인증 샷~~
귀한 사진 .해공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전남 장성과 전북 순창, 정읍에 걸쳐 있는 백암산(741m)은 노령산맥이 남서쪽으로 뻗다가 호남평야에서 솟아오른 산으로 내장산 국립공원에 속한다.
예로부터 봄이면 백양, 가을이면 내장이라는 말이 있다. 백암산의 절경이 결코 내장산에 뒤지지 않는다는 의미.
백학봉과 상왕봉, 사자봉 등의 기암괴석이 곳곳에 있으며, 산세가 험준한 편이다. 특히 비자나무숲과 회색줄무늬 다람쥐가 유명하며, 유명한 백양사가 자리잡고 있다.
백암산은 전남과 전북의 경계를 이룬다. 또한 운장산에서 대둔산으로 이어지는 큰 산줄기가 금산 땅으로 가지쳐 나온 미묘한 지형적 특성 때문에 전쟁말기에 퇴로가 차단된 빨치산의 중요한 거점이며 요새였다.
군경의 합동작전으로 2,000명 이상의 빨치산이 사살되었고 토벌에 참가했던 경찰과 군인, 민간인도 200명 이상이 희생되어 모두 2,563명의 생명이 이 산에서 숨을 거두었던 곳.
그 처절한 싸움터였던 배티재(잣고개), 고개마루(역평리와 건천리 사이고개), 서암산 아래 육백고지에 전승탑과 육백고지참전공적비 및 충혼비가 세워져 있다.
엄청난 비극의 현장이기도 했던 백암산은 작전상의 고지표시인 '600고지'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현지 주민들은 '백암산'이라 부른다. 남쪽 백암마을 위의 650m 주봉을 이루는 높다란 암벽이 하얗게 보이기 때문.
또 주봉 백암산의 북쪽 630m의 암봉은 서암산이라 부르고 있다.
가야할 713.5봉
선야봉 갈림길
714봉의 삼각점
760봉에서 분기하는 맥이 성치기맥 (城峙枝脈)
주화산에서 부여의 낙화암으로 벋어 내리던 금남정맥이 육백고지 전 765봉에서 가지를 쳐 선봉(697m),성치산(670m),봉화산(671m),
성덕봉(475m),덕기봉(542m),소사봉(309m) 을 거쳐 금산군 제원면 금강과봉황천(좌) 두물머리에서 맥을 다하는
무주 금강 서쪽,금산봉황천 남쪽 분수령을 성치기맥 (城峙枝脈)이라 한다.
(금남정맥 760봉)-선봉(697m)-성치산(670m)-봉화산(671m)-성덕봉(475m)-덕기봉(542m)-소사봉(309m
계목재 760봉 성치기맥분기점을 내려서면 이곳 계목재에 닿는다
790봉의 신선봉 정상
동이나물
이지점에서 봉수대170m 왕복해야합니다
봉수대 돌계단
봉수대에서 바라본 지나온 정맥길
봉수대에서 본 조망
봉수대에서 바라본 조망
태평봉수대 안내판
작은싸리재에서 하산합니다 다음구간 들머리를 확인하고 좌측 진동리 마을로 내려갑니다
진동이 마을로 내려가는길이 멀기만합니다
그나마 길가에 이쁘게 핀 복숭곷과 조팝나무가 피로를 덜게 합니다.
중리 경로당
오늘산행의 마지막 중리 1 교 타고 갈 버스가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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