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남정맥 (完)

낙남정맥 7 구간 (한치~여항산~오곡재)

솔바람. 2013. 3. 16. 22:59

 

여항산

여항산은 함안군 여항면 주서리, 창원군 진전면 여양리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 770m이다.

여항산은 덩치가 남해바다로 떠가는 형상이라 여항산(艅航山)이라 부른다.

갓을 쓴 사람이 요강에 오줌을 누는 형상이라 요강산으로 불렸고

그래서 산아래 봉성저수지가 생겼다고 한다.

미군들이 GOD DEMN 산이라 부른다는 “갓덤”은 거대한 암괴로 되어있어 조망이 좋다.

정맥을 따라가는 길은 중간중간 전망 좋은 바위가 나타나 쉬어가기 알맞다.

해발 770m로 6ㆍ25의 격전지이며 갓바위로도 잘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여항산의 본래의 지명은 알 수 없지만 조선 선조 16년(1583) 한강 정구가 함주도호부사로 부임하여 와서

풍수지리학적으로 남고북저한 함안의 지명을 배가 다니는 곳은 낮은 곳을 의미한다고 하여

남쪽에 위치한 이 산을 배 "여(艅)" 배 "항(航)"자로 하여 지은 이름이라 전하는데

이곳에서는 각데미(혹은 곽데미)산으로도 알려져 있다.

계곡의 맑은 물과 산허리를 감싸는 운무, 산중턱의 원효암과 칠성각, 의상대, 서리봉, 피바위 등으로 유명하며,

 6·25전쟁 때는 낙동강방어선으로 격전을 치른 곳이다.

정상에 오르면 20~30명이 앉을 수 있는 넓고 큰 마당바위(곽바위)가 있으며,

마당바위에서 남쪽에는 상여바위, 북쪽으로 조금 지나면 배넘기 도랑이 나오는데

노아의 홍수 때 배가 넘나들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산의 정상에 오르면 한 발자국 하늘이 낮아 보이고 쾌청한 날이면 지리산이 저 멀리 안개 속에 떠 있으며 ,

남해의 푸른 물결위에 한가로운 어선들이 손에 잡힐 듯 내려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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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남점맥 7구간  (한치-대부산-서북산-여항산-오곡재)

                   일 시     : 2013년 1 월 17 일 (목요당일)

                   위 치     : 함안.   

                   코 스     : 한치-대부산(649m)-감재고개-서북산(739m)--706봉-소무덤봉-

                                (668m)-여항산(770m)-743.5봉-미산령(동물이동통로)-557봉-오곡

                                재-오곡리

                   산행거리및시간: 16.7 km (실측거리)   5시간40분

                                                

 

 

 

오늘산행의 들머리 한치 (진고개.79번국도) 진고개 휴게소

 한티재의 유래는 이 고개에 올라서면 진동 앞바다가 한눈에 확 트이게 보인다는 뜻에서 한티재라 불렀다

화장실 옆 들머리를 오른 대원들

 

한치(진고개. 79번국도) 휴게소 건너 지난번 하산지점

뒤로 광로산 삿갓봉이보입니다.

 대부산 오르기전의 봉화산 갈림길

 

한치고개1.8 km지점의 이정목 봉화산 갈림길 정맥은 좌측 서북산 방향으로 가야합니다 (알바주위구간 ) 

 

대부산 정상  한치고개에서 1 시간 소요

대부산의 삼각점 확인

 

가야할 서북산이 높아보입니다

서북산오르는 능선길

감채고개의 이정목

감채고개

 

서북산 정상 이정목 여항산 4.8 km 이네요.

 

서북산 정상

                   

서북산 정상의 이정목과 삼각점확인

서북산 정상

낙남정맥 종주 길에 올라선 서북산은 경남 마산과 함안을 어우르는 고산으로 해발고도가 738m에 이릅니다. 여항산에서 남동쪽으로 4Km 가량 떨어져 있는 이 산은 정상에 전적비가 세워질 만큼 치열하게 한국전쟁을 치러낸 전장이기도 합니다.

 

  1950년 6월25일 일요일 새벽에 기습공격을 감행한 북한군은 서울을 빼앗은 여세를 몰아 대전을 점령한 후, 8월15일 광복절 안에 부산을 탈취하겠다는 목표로 8월대공세를 펼쳤습니다. 낙동강 방어선 서남부지역과 경주-포항지역을 공격하여 유엔군의 병력을 분산시키고 대구의 정면과 좌우측을 공격해 대구에 이어 부산을 점령한다는 작전 하에 낙동강 방어선 전 지역에 대한 공격을 실시하였습니다.  낙남정맥 종주 길에 올라선 서북산은 경남 마산과 함안을 어우르는 고산으로 해발고도가 738m에 이릅니다. 여항산에서 남동쪽으로 4Km 가량 떨어져 있는 이 산은 정상에 전적비가 세워질 만큼 치열하게 한국전쟁을 치러낸 전장이기도 합니다.

 

  1950년 6월25일 일요일 새벽에 기습공격을 감행한 북한군은 서울을 빼앗은 여세를 몰아 대전을 점령한 후, 8월15일 광복절 안에 부산을 탈취하겠다는 목표로 8월대공세를 펼쳤습니다. 낙동강 방어선 서남부지역과 경주-포항지역을 공격하여 유엔군의 병력을 분산시키고 대구의 정면과 좌우측을 공격해 대구에 이어 부산을 점령한다는 작전 하에 낙동강 방어선 전 지역에 대한 공격을 실시하였습니다.

 

서북산은 경남 마산과 함안을 어우르는 고산으로 해발고도가 738m에 이릅니다.

1950년 6월25일 일요일을 기해 새벽에 기습공격을 감행한 북한군은 서울을 빼앗은 여세를 몰아 대전을 점령하자

8월15일 광복절 안에 부산을 탈취하겠다는 목표로 8월대공세를 펼쳤습니다.

낙동강 방어선 서남부지역과 경주-포항지역을 공격하여 유엔군의 병력을 분산시키고 대구의 정면과 좌우측을 공격해

대구에 이어 부산을 점령한다는 개념 하에 낙동강 방어선 전 지역에 대한 공격을 실시하였고 그 일환으로 마산전투가

치러졌습니다. 진주를 점령하고 마산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북한군을 저지하고자 미(美)25사단장 킨(William B. Kean)은

“킨 특수임무부대”를 편성하여 유엔군의 사단급 반격작전을 한국 전쟁 최초로 펼쳤습니다.

8월7일부터 12일까지 치른 마산전투에서 북한군에 선점된 서북산은 뺐고 뺏기는 혈전 끝에 우세한 전력을 보유한

유엔군의 수중으로 넘어갔습니다. 서북산 전투는 8월7일로 끝난 것이 아니고 온창일 박사가 그의 저서 “한민족전쟁사”를

통해 전하는 대로 그해 8월말까지 서북산의 주인이 19차례나 바뀌는 등 접전이 계속 되었습니다.( 펌글)

 

전적비 뒷면에 새겨진 전문이다.
『이곳 서북산 전투는 6.25 한국전쟁 중 낙동강 방어전투가 치열하였던 ‘50. 8월에 미 제25
사단 예하 제5연대 전투단이 북괴군을 격퇴하여 유엔군의 총반격작전을 가능케 하였던 격
전지이며, 이 전투에서 전사한 미군 중대장 티몬스 대위 외 100여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그
아들 주한 미8군 사령관 리챠드.티몬스 중장과 제39사단장 하재평 소장을 비롯한 사단장병
및 지역주민 등이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웁니다. 1995. 11』

 

 

 

 

 

 

뒤돌아본 서북산 방향의 정맥길

 

여항산 1코스 갈림길 이정표

여항산 오르는 계단과 암릉

여항산 정상에서 인증샷~~~

 

 

여항산 정상에서 바라본 조망아래 봉성저수지와 멀리 무학산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뒤돌아본 서북산 방향의 마루금

 

 

                

 

 

                   

 

 

 

미산령의 동물 이동통로에서 본 팔각정

 

오곡재

 

오곡재(비실재)로 내려선다

 

군북~오곡재까지 확포장도로 

눈때문에 버스가 오곡재까지 올라오지못해 오곡리 마을까지 내려가야한다 (접속구간 약 1.6 km)

오곡재에서 해공님의 귀한 약주를 한잔씩 나눠마신다

아름다운 강산님이 한컷 찍어주신다

 

 

               

 

저 아래 반가운 버스가 기다린다

오늘 산행은 여기서 마무리를 한다

낙남정맥의 최고봉인 여항산과 긴산행을 무사히 마치게 해주신 신에게 감사드리고

새마포 대장님들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