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능선 전투 전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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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5년 03월 01일 토요일
구간 : 양구
코스 : DMZ 자생식물원-대암샘터-돌산령-피의능선 전투전적비
거리 : 17 km
시간 : 6시간(안내판기준) 본인의 기록은 아래 참조
난이도 : 어려움
안내 : 거인산악회 DMZ평화의 길 팀
오늘 DMZ 평화의길 27 코스 답사를 위해 일찍 집을 나서 즐거운 마음으로
거인산악회 DMZ 평화의 길팀과 함께 버스에 올랐습니다
반가운 얼굴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오늘 일정을 자세하게 설명해주시는
소 팀장님께 감사함를 전하며 미지의 코스를 기다려집니다.
오늘은 3일 연휴라서 길이 엄청막혀 예정시간보다
1시간 30분 늦께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코스는 국립DMZ자생식물원으로 에서 피의능선 전투전적비에서 이어지는 길이다.
옛 돌산령 고갯길을 구비 구비 돌아서 월운리 저수지를 지나
피의 능선 전투 전적비까지의
코스로 약 17 km의 돌산령로를 따라 거의 아스팔트길로 이어진다.
6.25전쟁의 격전지였던 도솔산, 펀치볼 전투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구간이다.
DMZ 북방계 지역의 식물자원을 수집·보전하는, 국립DMZ자생식물원
도솔산 전투와 펀치볼 전투에서 희생된 순국선열을 추모하기 위한,
도솔산·펀치볼 지구 전투전적비
등을 감상할수있는 양구의 청정 코스입니다.
DMZ 자생식물원
DMZ는 한반도의 동서를 잇는 국토생태네트워크의 핵심벨트로 분단 이후 50여 년간 민간인의 접근이 통제ㆍ제한되어 왔기 때문에 그 어느 지역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자연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 지역은 자연경관이 우수하고 생물다양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주요 희귀 야생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어 세계적으로 자연생태계의 보고로 인정을 받고 있고 경제적ㆍ학술적 가치에 있어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곳이다. 현재 비무장지대 및 인접지역의 생물상은 식물 2,237종, 어류 106종, 양서ㆍ파충류 29종, 조류 201종, 포유류 52종을 차지한다. 이는 비무장지대 주변이 면적에 비해 가장 다양한 생물종을 가진 생물다양성의 보고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비무장지대 내에는 더욱 다양한 동ㆍ식물이 존재하리라 예측된다.
국립수목원은 이러한 DMZ의 다양한 식물자원 중 특히, 북방계 지역의 식물자원을 수집·보전하고, 통일 후 북한지역의 산림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한 연구 그리고 동서 생태축을 연결하는 DMZ지역의 희귀, 특산식물을 보전하고자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만대리에 DMZ자생식물원을 조성하였다.
DMZ자생식물원은 크게 5개의 전시원으로 구성되었다. DMZ와 북방계식물 중 고산지역에서 서식하고 있는 식물을 보전하기 위한 ‘고산식물원’과 DMZ지역의 식물을 수집ㆍ보전하는 ‘DMZ보전원’, DMZ 서부평야지역의 습지, 임진강, 한강의 저층습지를 보전하기 위한 ‘저층습지원’, 대암산 용늪 등을 보전하기 위한 ‘고층습지원’, DMZ의 모습과 전쟁의 흔적 등을 전시하는 ‘DMZ기억의 숲’ 등으로 조성되었다.
거인산악회 DMZ 평화의길 팀의 단체사진
27 코스 시작점인 DMZ 자생식물원에서 역 방향 피의능선 전투전적비 까지의 트레킹
국립 DMZ 자생식물원에서 월운리 저수지 피의 능선 전투전적비까지의 구굴 맵
산길샘 나들이에서 입니다.
산길샘에서 의 본인의 기록입니다.
총거리 17.35 km. 소요시간 5시간 05분
두루누비에서의 본인 기록입니다.
총 소요시간 약 4시간 55분
DMZ 자생식물원앞 종합 안내판 QR 코드 찍고 따라가기 시작~~
우측 해안면 펀치볼로 방향
피의 능선 전투전적비 방향으로
돌산령 터널 옆 소로를 따라서 오릅니다.
대 전차 방호벽을 지나서 우측 방향으로 직진 합니다.
돌산령 터널
지방도 제453호선은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북면 원통리 북면 교차로와 양구군 동면 임당리를 잇는 강원특별자치도의 지방도이다.
2002년 착공된 길이 2,995m의 돌산령터널이 2009년 7월 1일에 개통되어 양구 해안면 ~ 동면 구간이 약 7km 정도 감소되고 운행시간도 크게 감소하였다
돌산령로는 겨울철이라 차량 통제. 폐쇄도로라 차단막이 막고있습니다.
고개 중간에 터널 진입로와 옛길이 만나는 교차로가 있다. 옛길은 돌산령로 구간이다. 직진하면 돌산령터널, 길이 험난한 옛길로 올라가면 돌산령 정상이 나온다. 돌산령은 양구군 동면과 해안면의 경계이다.
돌산령로
양구군 동면과 해안면을 잇는 구간에는 돌산령이 있다. 해발 1,050m다. 해안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산을 넘어가야 하기 때문에 길이 좁고 구불구불하여 시간도 오래 걸리고 위험했으나, 양구군 동면과 해안면을 잇는 돌산령이 터널화된 이후로는 그나마 나아졌다. 물론 자전거 애호가 등 돌산령 옛길을 찾는 수요는 아직 있지만 돌산령 정상에는 민간인 통제선이 있으므로 사진을 촬영하다 군사보안위반으로 제재받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 또한 도로 주변은 지뢰밭이므로 출입이 통제된 도로 주변은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도로 우측에 명품숲이라네요.
철망으로 닽혀있습니다.
경고 민간인 통제구역
이지역은 미확인 지뢰지역 출입 절대 금지 경고.
돌산령로 오유리
완만하게 구불거리며 돌산령을 올라간다.
돌산령로를 따라 오유리 비아리 팔랑리 월운리로 이어진다
마을 이름들이 참 예쁘다.
두번째 만나는 대 전차 방호벽을 통과
대암 샘터
대암샘터 는 동면과 해안면을 잇는 돌산령 정상부근의 위치하고 있으며, 고산지대 암반에서 깨끗한물이 마르지않고 샘솟아 많은사람들이 쉬어가며 목을 축이는 고마운 샘터입니다.
대암샘터에서 식수도 보충하고
대암샘터앞 도로에서 늦은 점심을 간단하게 해결합니다
함께한 일행들~~
펀치볼(해안면 분지)을 조망 할수있는 전망대
전망대에서 본 해안면(펀치볼) 일대
만대리와 만대저수지가 보입니다.
도솔지맥과 그너머로 희미하게 백두대간 설악산권이 조망됩니다.
도솔지맥의 힌 봉우리인
통신부대 봉(1304m)이 보입니다.
도솔산(1148.3m)
도솔산지구전투는 6·25전쟁 당시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던 양구군 해안면 도솔산(해발 1148m)에서 국군 해병대 제1연대가 북한군 2개 사단과 1951년 6월 4일부터 20일까지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도솔산지구의 24개 고지를 모두 탈환한 전투로, 도솔산지구작전이라고도 한다.
도솔지맥 지도
도솔지맥(兜率枝脈)은 백두대간이 금강산 비로봉(1639m)에서 남진하여 20.4km를 내려와
매자봉(1144m)에서 우측으로 한줄기를 떨구고, 좌측으로 크게휘어 동해안쪽으로 내달리며
무산(1319.7m)을 지나고, 남한땅으로 넘어와 향로봉(1287.4m)을 일구고 설악산에 이른다.
매자봉(1144m)에서 우측으로 가지친 한줄기는 남진하며 매봉(1290.6m), 가칠봉(1242.2m),
대우산(1178.5m),도솔산(1147.8m),대암산(-1.3km.1304m)등 1000m이상의 산들을 일구고
봉화산(874.9m)에 이르러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사명산(1198.6m), 죽엽산(859.2m),
부용산(882m), 오봉산(779m)을 일구고 다시 방향을 남쪽으로 바꿔 수리봉(656m)을 올린후
소양강이 북한강에 합류하는 우두산(133m)에서 끝나는 도상거리 약 124.1km의 산줄기다.
도솔지맥의 명칭은 도솔산(1147.8m)에서 따온듯 싶은데 분기봉도 아니고
산줄기중 최고봉도 아니어서 좀 어패가 있긴 하지만,
일부에선 소양북기맥으로 표기하고 있기는하나 이미 도솔지맥이라는 명칭으로
친숙하게 굳어져 있는 상태여서 도솔(兜率)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높이로 따지면 대암산(1304m. 1.3km나 떨어져 있다), 가칠봉(1242.2m), 사명산(1198.6m)이 있고
,최초 분기점도 아니지만, 아마도 일반인이 갈 수 있는 실질적인 시작점인 산이 도솔산이여서
도솔(兜率)이라는 명칭을 붙였는듯 싶다.
매자봉(1144m)부터 우두산(133m)까지의 거리는 도상거리 124.1km가 되나
돌산령 북쪽의 36km는 갈 수 없으니 실 산행거리는 88.1km가 된다.
도솔산(1147.8m), 대암산(-1.3km.1304m), 봉화산(874.9m), 사명산(1198.6m),
죽엽산(859.2m), 부용산(882m), 오봉산(779m), 수리봉(656m), 우두산(133m)을 지나고
양구군, 인제군, 화천군, 춘천시등 4개 시군을 지난다.
도솔산 정상 오르는 길이 차단막으로 통행이 불가합니다.
아쉽게도 패스~~
도솔산 전적비 입구
성골지맥 능선
성골지맥(城谷枝脈)은 도솔지맥 도솔산(1148m) 에서 동쪽으로 분기 해서 수입천(水入川)과
양구서천의 경계를 이루며 비둑고개, 두밀령(788.3m), 항령, 756.5봉, 성골령, 오미령,
성주봉(626.1m)을 지나 북한강(파로호)과 서천의 두물머리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0.5 km 되는 산줄기 이다.
성골지맥의 수리봉 월명봉일대가 피의능선 주무대입니다.
피의 능선이란 명칭의 유래는 많은 사상자가 발생해 능선이 피로 넘쳐 흘러 종군기자들이 이 능선을 피의 능선이란 이름으로 보도하면서 붙여졌다.
이 일대가 한국전쟁사에서 치열했던 전투. 영화 태국기 휘날리며의 주무대
6·25남침 전쟁사는 양구 펀치볼(해안분지)의 고지들에서 약 221일 동안 벌어졌던 주요 전투를 9개, 사상자 수를 약 25만 여명으로 압축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백석산, 도솔산, 단장 및 피의 능선, 펀치볼, 가칠봉 등 핵심 전투들이 벌어진 고지들의 이름을 딴 양구군 월운리의 ‘펀치볼지구전적비’, 만대리의 ‘가칠봉전투전적비’ 등 많은 ‘전적비’속에서 전해지고 있다.
펀치볼과 월운리 사이. 돌산로 DMZ 평화의길에서 본 좌우 방향 지도.
월운리 위쪽이 피의능선 그 위쪽이 단장의 능선
우측이 도솔산과 펀치볼 좌측이 어은단맥의 어은산과 백석산
기묘하게 생긴 바위가 금방 떨어질것 같습니다.
자작나무숲
좌측이 돌산령 터널 방향
월운 저수지 너머로 피의 능선 방향
월운 저수지
월운 저수지에서 인증 샷
월운(月雲)리 마을.
일명 달운리라고도 불리는 마을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갯말, 뒷말, 뒷버덩, 암잣골, 양짓말이 병합돼 월운리가 됐으며 현재 금강산 가는 길인 31호선 국도의 최북단 마을로 비득고개와 연결돼 있다.
피의 능선 전투(영어: Battle of Bloody Ridge)는 1951년 8월 16일부터 9월 5일까지 강원도에서 벌어진 전투로 한국 전쟁의 일부이다. "피의 능선"이란 명칭의 유래는 많은 사상자가 발생해 능선이 피로 넘쳐 흘러 종군기자들이 이 능선을 피의 능선이란 이름으로 보도하면서 붙여졌다.
6·25전쟁 당시 양구 북방의 피의 능선에서 벌인 진지(陣地) 공격전투.
전투기간은 1951년 8월 17일부터 9월 3일까지이다. 피의 능선(稜線)이란 『Star and Stripes』지가 지은 이름으로 3개의 고지 즉, 983고지 · 940고지 · 773고지와 연결된 산맥으로 이루어진 능선을 말한다.
피의 능선전투는 국군과 유엔군이 캔사스-와이오밍 선으로 진출한 후, 주 저항선 전방의 전초기지 확보를 위해 제한된 공격작전을 실시하고 있을 때, 미 제2사단과 국군 제5사단 제36연대가 양구 북방의 피의 능선을 공격하여 북한군 제12사단과 제24사단을 격퇴하고 목표를 점령한 공격전투이다.
피의 능선에 대한 공격은 1951년 8월 17일 아침 한국군의 공격으로 시작되었다. 8월 25일 10여 일에 달하는 공격으로 능선을 점령했으나 다음날에 탈취당하고 말았다. 이때 한국군 제36연대는 1,0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내었다.
그 뒤 미군은 제24사단의 4개 포병대대, 중형포 2개 대대, 1개의 105㎜ 대대 , 2개의 중박격포대대, 2개의 연대 전차중대, 그리고 중형 전차대대 1개 중대 등을 투입하여 피의 능선에 공격을 감행했다. 8월 27일, 940고지에 있던 미 제9연대 제2대대가 983고지를 공격하였고, 28일에는 제3대대가 동쪽에서 긴 능선을 공격했으나 실패하였다.
30일에는 제1대대 및 제2대대가 북쪽 940고지에 대한 정면 공격을 감행하였으나 능선 정상의 수백 미터 전방까지 진출했다가 적의 사격으로 저지당하고 말았다. 이후 9월 3일까지 제1대대는 포병 및 공중의 지원을 받으며 이 능선을 수차례에 걸쳐 공격하여 결국 견고히 구축된 적의 방어진지를 점령하기에 이르러, 3주일 동안 지속된 한 · 미 양군의 공격은 종지부를 찍었다.
이 전투로 인해 국군과 미군은 1개 연대 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북한군은 1개 사단 규모 이상의 피해를 보았다. 또 북한군은 펀치볼 북쪽 능선으로 물러서게 되었으며, 한 · 미 양군은 피의 능선을 장악하여 백석산과 대우산 간의 측방도로를 확보하였다. 당시의 격전지에는 1980년 11월 11일 전투를 기념하기 위한 전적비가 세워졌다.
1951년 8월~10월까지 이 두 개의 이름없는 능선에서 격전이 벌어졌다. 낙동강 방어 기간을 제외하고 미군은 이 전투에서 6·25 전쟁 기간 중의 혈전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처럼 많은 손실이 좁은 지역에서 발생하였다는 것은 이 전투가 얼마나 격렬하였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의 종점인 피의 능선 전투전적비의 안내판 에서 27코스를 마무리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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