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정맥 (完)

한남정맥 7 구간 (토끼재~한세대 정문))

솔바람. 2010. 8. 15. 21:58

 


광교산
광교산은 수원의 북쪽에서 오는 찬바람을 막아주며 시가지를 품에 안고 있는 수원의 주산으로 원래 이름은 광악산이었으나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광교산으로 명명되었다고 전해진다. 광교산은 경부고속도로와 서울-수원간 도로 사이에서 남북으로 약 2㎞정도에 걸쳐 뻗어있는 산으로 수원시 상광교동에 속해 있다.산의 능선이 매우 한적하면서도 완만하고 사이에 수목이 우거져있어 산림욕을 하거나 당일코스로 오붓하게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옛부터 광교산은 수원 8경의 하나로 불렸는데 광교적설(光敎積雪)이라하여 광교산에 눈이 내려 나무에 수북히 쌓여 있는 경치의 아름다움은 8경중에서도 첫 번째로 손꼽혔다


광교산의 원래 이름은 광악산(光岳山) .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과 싸워 이기고 광악산 행궁에 머물 당시 광채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광경을 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주는 산'이라고 한 다음부터 광교산으로 바뀌었다는 전설이 있다.

 


 
산행일시 : 2010년 07월 29일 ~08월 12일 목요일(2회로 나누어 이 구간은 동진으로 종주했슴)

산행위치 : 한남정맥 광교산 구간 (수원 의왕 용인)

산행코스 :  한세대 정문-->큰말고개-->오봉산-->고고리고개-->지지대고개-->

              통신대 헬기장-->백운산-->광교산-->토끼재-->상광교 버스종점

산행거리 : .....???

산행시간 : .....??? 시간은 오늘 산행에 별 의미를 두지 않음.

 

 한세대 정문앞에서 우리산줄기님들 기념촬영

 

 큰말고개 다음구간 들머리 확인 하고... 이구간이 원 정맥길입니다.좌 측부터 군포시로 나누어진다

 

 오늘 산행 들머리에서 마지막 점검하고 산행이 시작합니다.

 종가집 고기집앞으로 산행들머리

 첫번 철탑

 고인돌

 

 오봉산 갈림길  290m 정상 올라갔다가 디시 빽 해야합니다.

여기서 우측으로 바로 꺽어야되는데  병풍바위 방향으로 직진 쭉~~해버려  근 1시간 알바. 흐미~~~

 오봉산에서 바라본 수원쪽 조망이 날이 흐려 시원 찮혀~~

 오봉산 정상 204 m

 고고리고개  휴식겸 .알바 1시간 소요해서 고고리고개 도착

 

 고고리(이동)고개 삼거리 를 건너 배수지 철망쪽으로 오른다

 

 의왕 고색간 고속도로위 생태통로에서

 

 공동묘지위쪽으로 정맥 마루금이 이어지고 건너 지나온 오봉산과 철탑이 보입니다.

 

 수원과 의왕 경계 이정목

 철탑 12/13번

 

 지지대 쉼터  휴게소

 

 지지대 고개 마루의 지지대 쉼터

 

지지대 고개는 수원에서 서울쪽으로 갈 때 의왕시와 경계가 되는 작은 고개.

이 고개는 예전엔 사근현(沙斤峴)이라고 불렀으나 정조가 미륵 고개라고 불렀으며, 그 후에 지지대고개라고 고쳐 부리게 됐다.

미륵당을 지나 괴목정교를 건너 시작되는 고개의 정상이 그 곳인데 정조께서 수원에 행차할 때 이 고개를 넘어 다녔다.

고개에 오르면 멀리 화산쪽에 있는 부친(사도세자 : 후에 장조로 추존)의 능소가 보이는데도 능까지 가는 시간이 답답하기 이를데 없어,

"왜 이렇게 더딘가(遲遲)?"고 한탄을 하였으며, 참배를 마치고 서울로 환궁을 할 때는 이 고개의 마루턱에 어가를 멈추어 서게 하고

뒤돌아 서서 오랫동안 부친의 묘역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또 어가에 올라서도 화산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을 돌리지 않아 행차가 자꾸 늦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사연 때문에 고개 이름이 더딜 지(遲)자가 들어간 지지대가 되었다고 한다.

 

또 어느날 40대의 정조는 능행차 길에 70대의 영의정 채제공에게 "내가 죽거든 아버지가 계시는 현륭현 근처

언덕에 묻어 주시오"라고 부탁한 일이 있었다.

세상에서 하지 못한 효도를 죽어서라도 해야겠다는 비장한 유언이었던 것이다.

이 고개위에는 정조의 거룩한 효행을 기념하여 순조 때 지지대비를 건립했는데 현재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돼 있다.

                                                                                                                                      <출처 : 경기도박물관>

 

 

  효행기념관을 둘러보고 혜경궁 홍씨의 피맺힌 한을 가슴에 세깁니다.

 

정조(이산)의 아버지 사도세자 (이선·장조)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선(李煊), 자는 윤관(允寬), 호는 의재(毅齋)이다.

장조(莊祖, 1735년 - 1762년)는 영조의 둘째 아들로, 조선의 추존왕이다. 사도세자(思悼世子)나 장헌세자(莊獻世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영조의 맏아들 효장세자가 일찍 죽어 세자가 되었다. 노론을 지지하는 아버지 영조와 정견을 달리하여 늘 대립했으며, 결국 노론을 상징하는 아버지에 의해 뒤주 속에서 굶어 죽었다. 영조는 뒤에 이를 후회하여 그에게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렸다.

※ 소론에 동정적이었던 세자는 노론의 '소론 사냥'에 반대했고 노론의 눈 밖에 났다. 노론은 세자를 압박했고 세자는 노론에 대항하기 위해 더욱더 소론과 가까워졌다. 급기야 노론에 속한 장인(홍봉한)이 '사도세자와 소론의 영수 조재호가 손잡고 정변을 꾀한다'고 고변한다

 

노론이 지배하는 시대의 희생양이 된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

당시 나이가 어렸던 정조대왕은 아버지(사도세자)가 죽임을 당하는 모든 과정을 지켜 보았기 때문에 아버지의 죽음을 평생의 한으로 여겼고

 자신이 왕위에 오르자 아버지께서 묻힌 수원 화산에 자주 행차하셨던 것이다. 

오죽하면 당시 능을 지키며 관리하는 관리인 능참봉이 '어렵게 능참봉 자리 하나 얻으니 임금님 행차가 한달에 스물 아홉번'이라고

한탄아닌 한탄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는 아버지를 죽인 노론에 대해 원한을 갖게 되며,1777년(정조 1년) 장헌세자(莊獻世子)로 아버지의 시호를 상시하었다.

1899년(광무 3년) 장조의황제(莊祖懿皇帝)로 추존되었다.

 

아버지: 영조(1694년 - 1776년)
어머니: 영빈 이씨
비(妃): 헌경왕후(獻敬王后,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 1735년 - 1815년)
아들: 의소세손(懿昭世孫, 1750년 - 1752년)
아들: 정조(正祖, 1752년 - 1800년)
딸: 청연공주(淸衍公主)
딸: 청선공주(淸璿公主) 
                                                      (글 : 한국의 산천에서 가져왔슴)

                   정조대왕 동상

조선 왕조사상 가장 뛰어난 왕이 될 수 있었던 사도세자와 그의 아들 효자 정조에 대해서...

조대왕의 효심이 느껴지는 지지대(遲遲臺) 고개는 수원과 의왕 경계를 이룬 곳이다. 예전 명칭은 사근현(沙斤峴)이었으며 또는 미륵댕이 또는 미륵당 고개로 불렸으나 지금은 '지지대 고개'로 불린다. 느리고 더딜 '지(遲)자를 쓴 지지대는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현륭원)을 참배하기 위해 지나고 돌아오던 언덕에 위치한다.

 

화산의 현륭원 참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올 때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이 고개에서 어가를 멈추어서게 하고 한참을 머무르며 부친의 묘역이 있는 화산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 고개를 넘어서면 아버지 장조가 묻힌 현륭원이 있는 화산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 어가에 올라서도  화산이 보이지 않을때까지 눈을 돌리지 않아 행차가 자꾸 늦어져 이고개를 느리고 더딜지(遲) 두자를 붙여 '지지대(遲遲臺)고개'라고 부르게 되었다. 

현재 지지대고개에서는 1807년 순조의 명을 받아 홍문관 제학 서영보가 비문을 짓고, 윤사국이 글씨를 쓴 '지지대비(碑)'를 만날 수 있다.

  

 

 광교산 등산 안내도

 지하통로를 지난다

 

 

 

 프랑스군 참전 기념비

 

 

 우리산줄기님들 화이팅~~

 광교산 헬기장

 통신대 헬기장으로~~

 통신대 헬기장 뒤쪽으로 올라야 할 공교산이 보인다

 통신대 철망 우측으로  위로 광교산 통신탑이 보인다

 

 백운산 정상

 

 

 한남정맥길은 백운산 찍고 다시 광교산 방향으로

 

 마루금의  멋진 노송 군락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돌탑

 

 

 

 광교산 정상이 비에 젖었습니다.

 오늘 산행은 여기서 마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