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창공원
..................................................
일시 : 2025년 02원 08일 토요일
구간 : 부안
코스 : 부안군청-매창공원-신월경로당-구암리 지석묘-부안 재생 에너지 파크
거리 : 19.2 km
시간 : 6시간(안내판기준) 본인의 기록은 아래 기록 참조
날씨 : 흐리고. 눈
안내 : 거인산악회 서해랑길 팀
부안군청 공영주차장옆 서해랑길 부안 50 코스 종합안내판 QR 코드 확인
부안군청에서~ 부안 에너지 파크까지 남진 방향으로
산길샘에서 본인의 기록입니다.
두루누비에서 본인의 기록입니다.
부안군청
부안군청 공영주차장 방향으로
부안군청앞에서 거인산악회 서해랑길 팀의 단체사진
부안 가정교회앞 계단을 오르면 서림공원으로 이어집니다.
서림공원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와 서외리에 있는 공원. 서림 공원은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와 서외리의 성황산(城隍山)[115m] 일대에 조성된 공원이다. 성황산은 전라북도 부안의 주산(主山) 역할을 하며 부안읍의 북서쪽에서 시가지를 감싸주는 형국이다. 부안현(扶安縣)의 수호신을 모신 성황사(城隍寺)가 있었기 때문에 ‘성황산’이라 부르며, 삼국 통일 당시 당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이 진을 치기 위해 오른 산이라는 뜻으로 ‘상소산(上蘇山)’이라고도 한다. 성황산의 남사면에는 현재 부안군청이 들어서 있고, 옛날에는 부안 관아가 있었다.
서림(西林)’은 부안 관아의 서쪽 숲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며, 부안 관아의 후원(後園)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1847년(헌종 13) 부안 현감 조연명(趙然明)[1847~1849]이 황폐한 산으로 방치된 관아 주변의 성황산을 보고, 동네 유지 33인으로 구성된 ‘33인수계(三十三人修契)’를 조직하여 봄가을로 직접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하고 서림정(西林亭)을 건립했다고 한다. 이후 이필의(李弼儀)[1864~1869] 현감이 부임했을 때도 황폐해져 있어 이전의 ‘계’를 부활하여 다시 숲을 가꾸게 되면서 오늘의 서림 공원이 되었다고 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서림공원이 환상적입니다.
부안의 여류신인 매창의 시비를 만난다.
서림정의 정자를 만납니다.
서림공원에서 본 군산 읍내
서림(西林)’은 부안 관아의 서쪽 숲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며, 부안 관아의 후원(後園)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1847년(헌종 13) 부안 현감 조연명(趙然明)[1847~1849]이 황폐한 산으로 방치된 관아 주변의 성황산을 보고, 동네 유지 33인으로 구성된 ‘33인수계(三十三人修契)’를 조직하여 봄가을로 직접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하고 서림정(西林亭)을 건립했다고 한다. 이후 이필의(李弼儀)[1864~1869] 현감이 부임했을 때도 황폐해져 있어 이전의 ‘계’를 부활하여 다시 숲을 가꾸게 되면서 오늘의 서림 공원이 되었다고 한다.
서림 공원은 전라북도 부안의 풍류와 선비 정신이 서려 있고 주변 풍경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는 공원으로 부안 군민들이 즐겨 찾는 명소이다. 생태·환경적 가치와 함께 관이 주도해 조성한 공원 숲이라는 임업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6년에 국가 산림 문화 자산으로 지정되었다. 서림 공원 내에는 서림의 숲과 정자를 조성한 부안 현감 조연명과 이필의의 공적을 기린 비석(碑石), 임정 유애비(林亭遺愛碑)가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설경이 힌폭의 그림같습니다.
인증 사진 한컷
설경을 담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혜원사 대웅전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 선운사 소속 사찰. 혜원사(慧圓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며,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 상소산(上蘇山)[성황산] 남쪽 기슭에 있다. 1924년 가야산(伽倻山)[1,430m] 해인사(海印寺) 삼선암(三仙庵)에 있던 승려 지승이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서외리에 인법당(因法堂)을 세우고 머물면서 ‘청일암(淸日庵)’이라 이름했다고 한다. 1954년 승려 지승의 상좌인 승려 혜경(慧鏡)과 양보현 보살이 성황산 북서쪽 성황사 위에 석조 법당과 요사채를 지어 사찰의 면모를 지니게 되었다. 1970년 9월 성황산 남쪽 기슭의 서림 공원 내 현 위치로 옮겼으며, 1999년 2월 9일 ‘혜원사’로 개칭하고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선운사의 말사로 등록하였다. 혜원사는 대한불교보문종 소속이었다가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으로 사찰 등록을 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서림공원의 무장애 나눔길
잘 가꾸어진 메타세콰이어 길을 지나갑니다.
눈 쌓인 메타세콰이어길
겨울 왕국입니다.
좌측으로 부안향교 방향이고 서해랑길은 직진으로 갑니다.
동화의 나라에 온거 같습니다.
전망대에서 본 부안 읍내 전경
이층 전망대
편백숲길이 눈에 쌓여 환상적입니다.
편백나무
서림공원을 내려옵니다.
부안군청에서 1.7 km 지점
매창로
부안중학교앞을 지나갑니다.
매창공원내 수변공원
매창공원내 시비 와 정자
나 부안왔다. 로고가 재미있다.
매창 테마관
시문과 거문고에 뛰어났던 조선 시대 명기(名技) 이매창(李梅窓)[1573~1610]을 추모하기 위해 매창 공원에 조성한 기념관이다. 이매창은 황진이(黃眞伊), 허난설헌(許蘭雪軒)과 함께 조선 시대 3대 여류 문장가로 손꼽힌다.
푸른쉼터
월명암에서 시 비
임생각 시 비
매창뜸.... 가람 이병기
부안 보훈회관
매창의 죽음을 슬퍼하며... 허균
아름다운 글귀는 비단을 퍼는 듯하고
맑은 노래는 구름도 멈추게 하네
........................................
이듬해 작은 복사꽃이 필때 쯤이면
그 누군가 설도의 무덤곁을 지나려나.
이글을 읽으며 지나는 나 역시 매창의 죽음을 슬퍼하는 허균의 심정을 느껴본다.
황진이에 버금가는 명기이자 조선 여류 시인의 한 사람으로 꼽힌 그녀는 서른 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와 교류하던 문인들, 특히 허균은 매창의 죽음을 슬퍼하며 글을 남겼다.
매창은 1600년을 전후하여 많은 인사들과 교류하며 다른 사람들의 문헌에도 이름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것은 허균(許筠, 1569~1618)과의 만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남도 명창. 이중선의 묘역
매창공원 옆 모셔져 있습니다.
취하신님께
이화우 시비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나를 생각하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매창(梅窓, 1573~1610)이다.
교과서에도 실린 글이다.
이화우(梨花雨) 흣날닐제 울며 잡고 이별(離別)한 님으로 시작되는 매창의 시조는
유희경을 생각하며 지은 시라 한다.
정비석님의 글입니다.
옛님을 생각하며 시비
매창이 죽은지 45년만인 1655년에 묘비가 세워졌고, 1668년에 부안의 아전들이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당시까지도 전해졌던 그녀의 한시 54편을 모아 1668년에 개암사(開岩寺)에서 매창집(梅窓集)을 간행하였다.
1983년, 이매창의 묘는 지방기념물 제65호의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그 묘역을 중심으로 매창공원이 만들어졌다.
2015년에는 이매창의 묘역을 중심으로, 넓이 7400평 규모의 매창 사랑의 테마 공원으로 확장되었다.
부안 출신의 기생, 매창
매창은 본명이 향금(香今)이고, 자는 천향(天香)이며, 호가 매창이다. 계생이라고도 하였다.
1573년(선조 6) 부안현의 아전 이탕종(李湯從)의 딸로 태어났다.
시문과 거문고에 뛰어나 당대의 문사인 유희경(劉希慶)·허균(許筠)·이귀(李貴) 등과 교유가 깊었다. 부안(扶安)의 기생으로 개성의 황진이(黃眞伊)와 더불어 조선 명기의 쌍벽을 이루었다.
부안에 있는 묘에 세운 비석은 1655년(효종 6) 부풍시사(扶風詩社)가 세운 것이다. 여기에는 1513년(중종 8)에 나서 1550년(명종 5)에 죽은 것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다. 그의 문집 『매창집』 발문에 기록된 생몰 연대가 정확하다. 그는 37세에 요절하였다.
유희경의 시에 계랑에게 주는 시가 10여 편 있다. 『가곡원류』에 실린 “이화우(梨花雨) 흣날닐제 울며 쟙고 이별(離別)한 님”으로 시작되는 계생의 시조는 유희경을 생각하며 지은 것이라는 주가 덧붙어 있다.
허균의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도 계생과 시를 주고받은 이야기가 전한다. 그리고 계생의 죽음을 전해듣고 애도하는 시와 함께 계생의 사람됨에 대하여 간단한 기록이 덧붙여 있다. 계생의 시문의 특징은 가늘고 약한 선으로 자신의 숙명을 그대로 읊고 자유자재로 시어를 구사하는 데에 있다. 그의 우수한 시재(詩才)를 엿볼 수 있다.
여성적 정서를 읊은 중에 「추사(秋思)」·「춘원(春怨)」·「견회(遣懷)」·「증취객(贈醉客)」·「부안회고(扶安懷古)」·「자한(自恨)」 등이 유명하다. 그는 가무·현금에도 능한 다재다능한 예술인이었다. 부안의 묘에 비석이 전한다. 1974년 그 고장 서림공원에 시비(詩碑)를 세웠다.
부안 생활 문화센터
매창로, 도로를 따라 직진합니다.
부안 진동공원 앞으로 통과
월륜길 방향으로
라온 요양원 옆으로
행안초등학교 앞으로
서해랑길 49 코스 안내판 확인
신월 마을
신월 마을 경로당 앞으로
정자와 당산나무
대초 경로당 앞
대초로
도화 버스정류장에서 ~구암방향으로
왼쪽 방향은 내변산
상서 초등학교앞 을 지나
구암 경로당앞을 지납니다.
부안 구암 지석묘군
부안 구암리 지석묘군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하서면 구암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남방식(바둑판식) 고인돌군. 지석묘군.
부안 구암리 지석묘군(扶安 龜岩里 支石墓群)는 대한민국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하서면 구암리에 있는 청동시대의 지석묘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103호로 지정되었다.
지석묘란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무덤으로서 고인돌이라고도 하며, 책상처럼 세운 탁자식(북방식)과 큰 돌을 조그만 받침돌로 고인 바둑판식(남방식)이 있다.
구암리에는 지석묘가 총 13기가 있었으나 현재는 10기만 남아있다. 대체로 자연암석을 떼어내 덮개돌로 사용한 바둑판식 지석묘로, 뚜껑돌이 큰 것은 길이가 6.35m, 너비 4.5m, 높이 70∼100cm에 받침돌 8개를 돌려 세웠다.
보통 4개의 받침돌을 이용하는데 반해 8개의 받침돌을 돌려 다른 지역 고인돌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구암리 지석묘군 흙 담장길을 따라서
석하마을 정자와 팽나무
석하길
석하길 가다 우측으로 꺽어 산옆으로
지선재(부안김씨 재실) 입구 비석앞을 지나갑니다.
굴다리 통과
천주교 등용성당
내변산 최 고봉인 의상봉. 정상은 군부대가 자리잡고있습니다.
30번 도로(변산 바다로) 아래 굴다리 통과
서해랑길 부안 49 코스 부안 재생 에너지 파크 안내판 QR 코드 찍고
오늘 트레킹은 여기서 마무리를 합니디
다음 48 코스를 기약하며 .........
'코리아 둘레길, 서해랑길(進)'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해랑길 47 코스 (0) | 2025.03.09 |
---|---|
서해랑길 48 코스 (0) | 2025.02.23 |
서해랑길 50 코스 (0) | 2025.01.26 |
서해랑길 51 코스 (0) | 2025.01.12 |
서해랑길 52 코스 (0) | 2024.12.29 |